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통합예약
전시 특별전시

특별전시

특별전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 전시기간

    2006/07/26~2006/10/08

  • 전시장소

    제왕기록실

 

다시찾은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전시장소: 국립고궁박물관 2층 제왕기록실

전시유물 :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47책 등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소재구)에서는 2006년 7월 26일(수)부터 10월 8일(일)까지 2층 제왕기록실에서 ‘다시 찾은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을 주제로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일제강점기 1913년 일본이 반출해 간 오대산사고본 중 남겨진 47책을 93년 만에 국내로 환수한 것을 기념하는 특별전이어서 우리 역사 복원 및 해외소장 문화재 반환이라는 큰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가 될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제1대 태조 임금부터 제25대 철종 임금에 이르기까지 역대 왕들의 행적을 중심으로 춘추관(春秋館)의 사관(史官) 들이 직필(直筆)로 서술한 조선왕조의 국가기록이다. 그 이후 임금인 고종, 순종의 실록도 존재하나 이들은 조선왕조에서 편찬된 것이 아니므로 통상 실록에서 제외된다.
총 1천7백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양으로 국왕, 국정과 왕실문화와 같은 나랏일 전반에 걸치는 포괄적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정족산사고본(1,707권 1,181책/서울대학교 규장각), 태백산사고본(1,707권 848책/국가기록원), 오대산사고본(27책/서울대학교 규장각), 기타 산엽본(21책/서울대학교 규장각), 총 2,077책이 국보 151호로 지정되어 있는 한편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이번에 환수되어 전시되는 오대산사고본은 관동대지진으로 대부분 사라지고 남은 74책 중 1932년 국내로 돌아온 27책의 나머지인 성종·중종·선조 3대 왕대 실록 47책이다. 조선왕조실록이 이미 국보로 지정되어 있어서 오대산사고본 47책도 추가 지정될 예정이다.

 

 

 

 

⊙『성종대왕실록成宗大王實錄』9冊
조선 제9대 성종 임금 재위 25년간(1469~94년)의 역사 기록으로, 총 47책 297권으로 이루어졌다. 성종 임금이 돌아가신 후 연산군 1년(1495년)에 편찬을 시작하여 연산군 5년(1499년)에 완성하였다. 성종대왕실록 오대산사고본은 선조 36년 전주사고본을 재출판하면서 만들었던 교정본이어서 먹 또는 붉은 색으로 교정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중종대왕실록中宗大王實錄』30冊
조선 제11대 중종 임금 재위 38년간(1506~44년)의 역사 기록이다. 총 53책 105권으로 구성되었다. 인종 임금의 재위기간이 1년도 못되어 명종 원년(1546년)에 편찬을 시작하여 5년 후에 완성하였다. 중종실록 오대산사고본도 성종실록과 마찬가지로 교정본이다.

 

 

 

⊙『선조소경대왕宣祖昭敬大王實錄』8冊
조선 제14대 선조 임금 재위 40년간(1567~1608년)의 역사 기록으로 총 116책 221권으로 구성되었다. 광해군 원년(1609년)에 편찬을 시작하여 광해군 8년(1616년)에 완성되었다. 임진왜란 중 자료가 소실되어 선조의 재위연간 중 임진왜란 이후의 기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참고자료】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개요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 분상본의 확립은 조선초기 세종대의 충주사고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종 13년(1431년), 태조·정종·태종 실록을 고려시대부터 있어 왔던 충주사고에 보관하였다. 그 후 세종 27년(1445년), 국가기록의 보다 안전한 보관을 위해 춘추관·성주·전주에 각각 사고를 설치하고 충주사고의 실록 복사본 세 부를 만들어 각각 봉안하였다.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그중 전주사고본만 남고 춘추관·충주·성주사고본이 불타 사라졌다. 전주사고본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아 왜란이 완전히 끝난 후, 고려시대 이래 천연의 요새지로 여겨졌던 강화의 마니산에 안치되었다.(804권 576책) 

선조 36년(1603년)에 실록 복인의 필요성에 따라 13대 실록 804권 259책의 간행을 시작, 3년 후에 춘추관·태백산·묘향산사고에 각각 나누어 보관하고, 전주사고본은 다시 강화 마니산사고에 두었다. 또한 이때 전주사고본의 교정본을 오대산에 봉안하니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이 성립된 것이다. 묘향산사고와 마니산사고는 이후 북방의 침입에 대비해 각각 무주 적상산사고·강화 정족산사고로 옮기게 되고, 춘추관사고는 이괄의 난 (1624년) 때 거의 파괴되어 조선왕조가 멸망했을 때에는 태백산사고·오대산사고·정족산사고·적상산사고의 4사고본만이 온전히 남아있게 되었다.

 

오대산사고본은 조선후기를 거쳐 유지되다가 일제강점기에 일본 도쿄제국대학으로 이관된다. 일본으로 간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대부분 소실되고 총 74책이 최종적으로 남는다. 1932년 이 중 27책이 국내로 돌아왔고 마침내 2006년 각계각층의 노력과 온 국민의 염원 끝에 나머지 47책이 환수됨으로써 모든 잔존 오대산사고본이 국내로 돌아오게 되었다.

 

관련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