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통합예약
전시 특별전시

특별전시

특별전시

조선왕실의 인장

  • 전시기간

    2006/08/15~2006/10/08

  • 전시장소

    기획전시실

국립고궁박물관 개관 1주년 기념

조선왕실의 인장 특별전 개최 

전시장소 : 국립고궁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소재구)은 개관 1주년 기념『조선왕실의 인장』특별전을 2006년 8월 15일(화)부터 10월 8일(일)까지 2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조선 왕실의 인장(印章)에 담긴 학문 및 예술 세계를 알리고자 기획된 이번 전시에서는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 왕실의 개인 인장과 인보(印譜) 등을 선보인다.


동서양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인장은 초기에는 주로 사용자의 이름과 직위를 새겨 신분과 신용을 나타내는 용도로 쓰였다.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던 인장은 중국 송·원대에 이르러 개인적 취향을 반영하는 예술적인 용도로 사용이 확대 되었다. 인장은 돌, 금속, 나무, 흙 등을 이용하여 각각의 재질이 갖는 색채와 조형적 장점을 살리면서 좁은 인면(印面)에 아름다운 서체로 뜻 깊은 글귀를 균형 있게 배치하는, 글씨와 그림 그리고 조각이 집약된 고도의 종합예술로 발전 하였다.


인장은 전서(篆書)로 글씨를 새긴다 하여 전각(篆刻)이라 불렸는데, 중국 명대에 이르러 문인들의 전각(文人篆刻)이 유행하기 시작하 였고, 동양의 문인들이 추구했던 시(詩)·서(書)·화(畵)가 함께하는 예술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문인전각으로서의 인장예술은 중국 명대부터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민간 뿐만 아니라 왕실에서도 유행하게 된다.


조선왕실의 인장에는 국새나 관인 등 국가업무용 인장, 왕과 왕비의 존엄성을 상징하던 어보(御寶), 그리고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던 인장 등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개인용 인장은 인장의 예술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으로서 조선 왕실의 문예취미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의 주된 전시품은 조선 제24대 왕 헌종(재위 1834~1849년)의 개인 인장과 수집 인장이다. 헌종은 조선 왕실의 인장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로서 문예(文藝)에 뛰어난 자질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인장에 대한 관심 이 커 많은 인장을 수집하였을 뿐 아니라 조선 후기 인장 예술의 기념비적인 인보인 『보소당인존(寶蘇堂印存)』을 펴냈다.


특히, 헌종이 사용하고 수집했던 인장에는 헌종 뿐 아니라, 정약용·김정희· 강세황·신위 등 당대를 대표하던 문인 석학들과 문팽·옹방강·오숭량 등 청나라 문인들의 인장들이 함께 있다는 점에서 예술적 측면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헌종이 애장하였던 인장과『보소당인존』에는 왕과 문인들의 교감, 조선과 청나라의 학문적 교유(交遊)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번 전시는 조선왕실의 인장예술과 문예취미를 이해하고, 인장을 통해 당시의 시대적·문화적 배경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좋은 계기 가 될 것이다. 또한 전시 기간 동안에는 김양동 교수(계명대학교 서예학과)의 ‘한국 인장·전각의 역사’(8월 23일, 수), 유홍준 문화재청 장의 ‘헌종의 문예취미와 서화 컬렉션’(9월 6일, 수), 최종덕 창덕궁관리소장의 ‘헌종과 낙선재’(9월 20일, 수), 김연수 국립고궁박물관 전시홍보과장의 '조선왕실의 인장'(9월 27일, 수)를 주제로 한 특별강연회를 국립고궁박물관 1층 대강당에서 총 4회에 걸쳐 갖게 된다.

 

 

◎ 헌종과 보소당인장 憲宗·寶蘇堂印章

 조선 제 24대왕 헌종憲宗(재위 1834∼1849년)은 8살에 왕위에 올라 23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그는 서화를 좋아하여 역대 이름난 작품을 많이 수집하였고, 문학적 소질도 뛰어나 『원헌집元軒集』이란 문집을 남겼다.


 헌종은 전서篆書와 예서隷書에 뛰어났으며 청나라에서 유행한 금석학에 영향 받아 오래된 청동기와 비석에 새겨진 글을 수집하는 데 열정을 쏟았다. 특히 인장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여 다양한 인장을 수집하고 감상하기를 즐겼다.

 

헌종이 수집했던 인장에는 한漢나라 고인古印을 비롯하여 명明나라의 대표적인 문인 전각가 문팽文彭의 인장, 강세황姜世晃, 정약용丁若鏞, 김정희金正喜, 권돈인權敦仁 등 조선의 명사들이 사용하던 인장이 포함되어 있다. 전각에 관한 감상 수준이 매우 높았던 헌종은 스스로도 많은 개인용 인장을 사용했다. 헌종의 자字와 호號를 새긴 인장을 비롯하여 서화 감상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던 낙선재樂善齋·보소당寶蘇堂 등 궁궐 전각의 이름을 새긴 인장, 그리고 문예 취미를 공유하던 김정희 일문이 즐겨쓰던 문구를 새긴 인장들이 있다.

 

헌종이 애장하였던 인장들에는 19세기 조선의 전각예술과 김정희· 옹방강으로 대표되는 조선과 청淸의 학문적 교유내용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헌종은 이 인장들을 인보로 엮어 『보소당인존寶蘇堂印存』이라는 이름으로 편찬케 하였으며, 편집은 전각에 조예가 깊었던 신위申緯와 조두순趙斗淳이 맡았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궁궐의 잦은 화재로 인해 많은 인장들이 소실되었고, 현재 전하는『보소당인존』과 대부분의 인장들은 고종 연간에 다시 모각하여 편집한 것이다.

 


◎ 고종대 왕실소장의 인장 高宗代王室所藏印章

조선 왕실에서는 헌종 임금 이후에도 많은 인장들이 지속적으로 수집, 제작되었다. 특히 조선 제26대 왕 고종高宗(재위 1863~1907년)은 헌종의 수집 인장을 모각하고 인보를 복간復刊하여 자칫 잊혀질 위기에 처한 헌종의 인장과 학문적 업적을 되살렸다.

 

헌종대에서 꽃피운 전각 예술은 고종대에 와서 대중화의 길로 들어섰으며, 전문 전각가에 의해 다양한 인보가 만들어졌다. 이 시기의 전문 전각가로는 정학교丁學敎(1832~1914년), 유한익劉漢翼(1844~1923년), 강진희姜璡熙( 1851~1919년), 오세창吳世昌(1864~1953년), 김태석金台錫(1875~1953년) 등이 있다.

 

이 시기 역시 중국 금석학의 열풍을 기반으로, 다양한 금석문 집성류와 19세기 중국 금석학자의 작품이 다수 왕실에 수장되어 있었다. 또한 왕실에서는 『덕수궁인존德壽宮印存』·『은친왕인존垠親王印存』 등의 인보도 만들어 졌다.

관련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