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전시
특별전시
정조의 효성과 노인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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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2013/05/07~201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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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소
조선의 국왕실
대왕대비 김씨가 50세,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60세를 맞는 상서로운 해를 기념하기 위해 정조는 1794년(정조 18) 정월에 백관을 거느리고 이들에게 축하의 예를 올린 후, 그 해 6월까지 전국에서 장수하였거나 부부가 해로한 노인을 조사하여 벼슬과 상을 내렸다. 당시 벼슬 또는 상을 받은 노인의 수가 총 7만 5100여명이고 그 나이의 합이 589만 8210세에 이르렀다. 정조가 노인들에게 은혜를 베푼 것은 부모에 대한 효성을 부모와 같은 연배의 사람들에게 확산하기 위해서였다.
정조는 기로신(60세 이상의 신하)에게 명하여 전국의 장수자와 해로자의 인원수를 기록한 책을 편찬하도록 명하고 이 책의 이름을 “인서록人瑞錄”이라고 짓도록 하였다.
1795년(정조 19)은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 사도세자(1735~1762년)와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1735~1815년)의 회갑이자 정조가 즉위한지 20년이 되는 해였다. 이러한 ‘동방 초유의 대경사東方初有大慶’를 맞아 정조는 그 해 윤2월에 어머니를 모시고 수원 화성에 위치한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顯隆園에 행차하였다.
1795년의 현륭원 행차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혜경궁의 회갑잔치였다. 회갑잔치는 화성행궁의 정당인 봉수당奉壽堂에서 거행되었다. 회갑잔치 다음날에 정조는 낙남헌洛南軒에 몸소 나와 수원부의 노인 등을 초대한 경로잔치[양로연養老宴]를 베풀었다.
1776년(영조 52) 2월 당시 왕세손이던 정조는 영조에게 『승정원일기』에 실린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기사를 삭제해 줄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상소내용을 들은 영조는 크게 감동하여 『승정원일기』의 기사를 삭제토록 명하고, <세손에게 내리는 글諭世孫書>과 영조가 친히 쓴 ‘효성스러운 손자孝孫’란 글자를 새긴 은인을 주조하여 왕세손인 정조에게 내려주었다.
1776년 3월 즉위 직후 정조는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복권을 추진한다. 사도세자의 존호를 ‘장헌莊獻’으로 올리고 수은묘垂恩廟・垂恩墓로 칭해진 사도세자의 사당과 묘소 또한 각각 ‘경모궁景慕宮’과 ‘영우원永祐園’으로 승격시켰다. 또한, 경모궁과 영우원의 의식절차를 서술하고 의식에 쓰이는 여러 가지 도구나 물건에 대한 그림을 그린 『궁원의宮園儀』를 편찬하도록 하였다.
1789년(정조 13) 정치기반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정조는 기존 사도세자의 묘소인 영우원을 당시 명당으로 알려진 현재의 수원 화성으로 옮기고, 이름을 현륭원顯隆園(현 융릉)으로 고쳤다. 정조는 이례적으로 무덤 주변에 모란과 연꽃무늬 조각의 병풍석을 만들어 두르고 나무를 심는 등 온갖 정성을 기울여 현륭원을 조성하였다. 현륭원은 고종 1899년(광무 3)에 융릉으로 다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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