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전시
특별전시
오백년 역사를 지켜온 조선의 왕비와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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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2015/07/07~2015/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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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소
기획전시실
올해는 국립고궁박물관이 문을 연 지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2005년 8월 15일 개관한 이래 국립고궁박물관은 조선 왕실의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전·관리하고 연구하여 그 성과물을 전시와 교육을 통해 국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간 국립고궁박물관이 특별전을 통해 조명했던 다양한 주제들은 조선 왕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한층 높이고 우리 전통 문화의 정수를 향유하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개관 10주년을 맞이하여 준비한 ‘오백년 역사를 지켜온 조선의 왕비와 후궁’ 특별전은 조선 왕실이 장구한 역사를 이어 오는 데 한 축을 담당했던 왕실 여성들의 역할과 위상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주목받은 일이 없는 왕비와 후궁의 다양한 모습들을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기 위해 관련된 많은 유물과 사진, 영상 등을 준비하였습니다. 이번 특별전이 각자의 소임과 역할을 다함으로써 조선 왕실 역사의 흐름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던 왕비와 후궁들을 새롭게 조명하는 기회가 되고, 이들에 대한 기존의 과장된 이미지 뒤에 가려져 있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왕실 여성의 위계
왕비는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위로는 왕실 어른들을 섬기고 아래로 내명부를 지도하여 왕실의 권위와 질서를 확립했다. 내명부는 품계를 받은 궁중 여성들을 말하며, 그 안에서도 정1품 빈嬪, 종1품 귀인貴人, 정2품 소의昭儀, 종2품 숙의淑儀, 정3품 소용昭容, 종3품 숙용淑容, 정4품 소원昭媛, 종4품 숙원淑媛까지는 왕의 후궁 층으로 내관內官이라고 하였다. 세자의 후궁은 종2품 양제良娣, 종3품 양원良媛, 종4품 승휘承徽, 종5품 소훈昭訓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왕비와 세자빈, 후궁들은 왕실 내의 엄격한 위계 질서 아래 있었으며 각각의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도 다르고 거주하는 곳과 입는 것, 먹는 것 등에도 차등이 있었다.
예를 들어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의 여성들이 왕실에 크고 작은 의식이 있을 때 입었던 예복인 원삼圓衫의 경우 황후가 황색, 왕비가 홍색, 세자빈이나 빈嬪은 자적색紫赤色, 왕녀·대군부인·군부인 등이 녹색 원삼을 착용하였다.
왕비가 되기 위한 절차, 가례嘉禮
조선 시대 왕비는 삼간택三揀擇 과정을 통해 최종 결정된 뒤 육례六禮라는 절차로 이루어진 가례를 올림으로써 국왕의 정식 배우자가 되었다. 조선 전기의 육례는 납채納采, 납징納徵, 고기告期, 책비冊妃, 명사봉영命使奉迎, 동뢰同牢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납채는 왕비로 결정되었음을 통보하는 의식이고, 납징은 예물을 보내는 의식, 고기는 혼인 날짜를 신부 집안에 알리는 의식, 책비는 신부를 왕비로 책봉하는 의식이다. 책봉 의식에서 왕비에게는 옥책玉冊과 교명敎命, 그리고 ‘왕비지보王妃之寶’라고 새겨진 금보金寶를 내렸다. 명사봉영은 왕이 신하를 보내 왕비를 궁궐로 맞이하는 의식으로 조선 중기까지 행해지다가 조선 후기에 왕이 직접 별궁에 가서 왕비를 궁궐로 데려오는 친영례親迎禮로 바뀌었다. 동뢰는 궁궐에서 왕과 왕비가 서로에게 절을 올리고 잔치를 여는 의식이다.
국왕과 후궁의 가례는 숙의(종이품從二品)나 빈(정일품正一品)과 같은 간택 후궁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왕비가 육례 절차를 다 거친 반면에 숙의는 독뢰연獨牢宴(국왕이 참석하지 않고 숙의가 홀로 행하는 의식)만 거행하고, 빈은 납채와 납폐·책빈·동뢰연의 네 가지 절차만을 거쳤다. 왕비 가례의 모든 의식은 가장 존귀한 등급의 예제禮制가 적용되었지만, 후궁의 가례는 육례 절차나 그 수에 있어 엄격한 차별을 두었다.
왕비와 후궁의 역할과 임무
조선 시대 왕비와 세자빈은 교육을 통해 법도를 익히고 왕실 내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였다. 특히 아들을 낳아 왕위를 잇게 하는 것은 왕실의 안정과 직결된 사안으로서 왕비와 후궁들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다. 왕비는 세자빈과 후궁들을 이끌고 친잠례親蠶禮를 주관하며 몸소 양잠을 해 보임으로써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이기도 하였다. 새로운 왕이 즉위하면 왕비는 국모의 자리에서 물러나 왕실의 최고 어른이 되었으며 경우에 따라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통해 한시적으로 국정을 돌보며 나이가 어린 왕이 국정 수행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보좌하기도 하였다.
사후까지 이어지는 권위
조선 시대 왕비의 상장례喪葬禮는 흉례凶禮 중에서도 가장 권위 있고 규모가 큰 의례로, 국왕에 준한 국장國葬으로 거행되었다. 왕비의 상장례를 담당한 국장도감國葬都監, 빈전도감殯殿都監, 산릉도감山陵都監 등의 임시기구 또한 국왕의 경우와 동일하였다.
후궁의 상장례는 사가례私家禮의 예장禮葬으로 진행되었다. 후궁의 상장례 절차는 뚜렷한 규정이 없었기에 생전의 지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고, 왕비의 국장에 비해 매우 간략했다.
국왕의 정식 부인이 아닌 까닭에 종묘에 신주를 모실 수 없었던 후궁들 가운데 영조의 어머니 숙빈淑嬪 최씨(1670~1718년)처럼 그 아들이 즉위 또는 추존追尊을 통해 왕이 된 경우에는 별도의 사당을 세워 종묘와 같이 영구적으로 제사를 올리기도 했다.
기품을 더하는 의복과 장신구
왕실 여성의 복식은 아름다움뿐 아니라 품위와 권위를 드러내고, 왕실의 엄격한 법도에 따라 신분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평상시 궁중에서 왕실 여성은 소례복小禮服인 당의唐衣와 스란치마를 입었다. 그리고 머리의 형태를 고정하거나 장식하기 위해 꽂는 여러 가지 형태의 비녀, 저고리 고름 또는 허리끈에 차는 노리개와 주머니 등으로 아름다움과 기품을 더하였다.
왕실 여성의 여가 활동과 불교 신앙생활
왕실 여성은 독서와 자수 등으로 여가를 보내는 가운데 궁궐 밖에 있는 친인척들과 편지를 주고받기도 하였다. 신앙 생활도 왕실 여성의 삶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는데, 특히 불교는 현실의 고통과 어려우믕ㄹ 극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정신적 위안처였다. 왕비와 후궁, 공주와 옹주 등은 독실한 불교 신자로서 대규모 불사佛事를 일으키기도 하였고, 그렇게 조성된 불화와 불상, 불경 등은 오늘날까지 전해져 당시의 높은 예술 수준을 보여준다.
왕비와 후궁의 경제 생활
왕비와 후궁은 공식적인 진상進上과 공상供上을 통해 의식주를 해결하는 한편 별도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왕실의 사유재산 관리 업무를 담당했던 내수사內需司는 왕비와 대비의 주된 수입원 가운데 하나였으며, 용동궁龍洞宮, 어의동궁於義洞宮 등의 왕실 궁방을 통해서도 재산을 관리하였다. 후궁들의 경우에는 각각의 궁방宮房을 운영함으로써 사유 재산을 관리하였다.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궁방 인장들은 조선 시대 후궁들의 경제적 기반의 하나였던 궁방의 존재를 보여 준다.
파란만장한 삶의 주인공들
왕실 여성은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으면서도 그로 인해 비극적인 삶을 살 수도 있는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왕위 계승 과정에서 빚어진 권력 투쟁에 휘말려 남편과 부모를 잃기도 하고 자신이 서인庶人으로 강등되거나 사사되기도 했다.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 김씨(1584~1632)와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 민씨(1667~1701), 그리고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1735~1815)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파란만장하고도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대표적인 왕실 여성들이다. 이들의 비극적인 삶은 각각 『계축일기』, 『인현왕후전』, 『한중록』이라는 대표적인 궁중문학 작품들에 투영되어 있다.
◇ 교체 전시 일정
- 1차 7월 13일
의친왕비 녹원삼 원본이 복제본으로 교체됩니다.
- 2차 7월 27일
임오가례간택단자가 정미간택단자로 교체됩니다.
◇ 특별강연
- 1차 강연
2015.7.23.(목) 14:00~16:00/ 국립고궁박물관 별관 강당
․ 조선 시대 왕비와 후궁의 위상과 그 변천
양웅열(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
․수렴청정의 왕비들
임혜련(숙명여자대학교 강사)
- 2차 강연
2015.8.13.(목) 14:00~16:00/ 국립고궁박물관 별관 강당
․ 궁중문학의 백미 『계축일기』,『인현왕후전』, 『한중록』
정은임(강남대학교 교수)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왕실 여성 관련 인장
이종숙(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
- 참가대상 : 일반인 200여명
- 참가방법 : 당일 선착순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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