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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의 어진御眞과 진전眞殿

  • 전시기간

    2015/12/08~2016/02/14

  • 전시장소

    2층 기획전시실

조선왕실의 어진과 진전



어진은 왕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말합니다. 그리고 진전은 어진을 봉안하기 위한 건물로서, 이곳에 어진을 모셔 두는 데 그치지 않고 정기적으로 예를 갖추어 의식을 행하였습니다. 조선 시대 어진은 국왕 자신과 왕실의 권위를 가시적으로 나타내는 상징물이었습니다. 특히 창업주인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정통성의 상징으로서, 조선의 국왕들은 정치적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태조 어진을 새로 제작하고 진전에 봉안하는 데 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진전은 한 분의 어진을 모신 진전과 여러 왕들의 어진을 모신 진전이 있었는데, 전자의 경우 태조 진전이 대표적이며 후자의 경우로는 궁궐 안의 선원전과 도성 내의 영희전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진전에서는 다례茶禮와 작헌례爵獻禮등의 의례가 행해졌습니다.
이번 특별전에 선보이는 현존하는 어진과 풍부하게 남아 있는 관련 기록은 조선 왕실의 어진과 진전이 지닌 가치를 이해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 어진과 진전의 역사The History of King's Portrait and Royal Portrait Halls

국왕의 초상화에 대한 본격적인 기록은 고려 시대부터 나타난다. 고려 시대에는 왕과 왕후들의 초상화가 활발하게 제작되었으며 초상 조각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고려의 어진은 궁궐 안의 진전인 경령전景靈殿과 원찰願刹내의 진전에 봉안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경령전에는 고려 태조와 선대 왕 4대의 어진을 모시고 원찰 내의 진전에는 왕과 왕후들의 어진이 개별적으로 모셔졌다.
조선 왕실은 고려의 어진 제작과 진전 운영의 전통을 선별적으로 계승하여  지속적으로  어진을  제작했다.  어진과  진전에  대한  관심은  조선 후기로 올수록 증대되어 재위 중인 왕들의 어진이 활발하게 제작 되었으며, 어진 제작 및 봉안과 관련된 의례들이 보다 확대되고 세부적으로 정비되었다.
선원전璿源殿과  영희전永禧殿 등  궁궐  내외의  진전에  선대왕들의  어진을 봉안하고 제향을 올리는 행사들은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 국왕 자신의 정통성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했다.

어진과 진전

조선시대 어진 제작 체계The System of Producing King's Portrait in the Joseon Dynasty

조선 시대의 어진 제작 방식은 대개 도사圖寫, 추사追寫, 모사摸寫로 구분된다. 도사는 살아 계신 국왕의 얼굴을 직접 보고 그리는 방식을 말하며, 추사는 국왕이 살아 계실 때 그린 어진이 없는 경우 그 얼굴을 아는 이들의 기억에 의존해 그리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모사는 기존의 어진이 훼손되었거나 기존 어진을 그대로 두고 다른 진전에 추가로 봉안해야 할 때, 기존 어진을 바탕으로 또 한 본의 어진을 제작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국왕과 신하들이 논의하여 어진을 제작하기로 결정하면 임시 기구인 도감都監을 설치하거나 담당 관리를 임명하여 어진 제작에 대한 전반적인  일을  주관하도록  했다.  선대왕의  어진을  모사하는  경우에는  대개 도감을 설치한 반면, 재위 중인 왕의 어진을 도사할 때에는 따로 도감을 설치하지 않고 종친宗親이나 신료들 중에서 담당자를 정하여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화원이 본격적으로 어진을 제작하는 과정에서는 단계별로 어진의 제작 상황을 살펴보는 봉심奉審이 이루어졌다.
어진 제작 과정
조선 왕실의 어진御眞과 진전眞殿

또 한분의 왕, 어진Eojin, the Embodiment of King

어진은 또 한 분의 국왕과 같은 존재였다. 어진을 옮길 때 가마를 사용하고 의장을 갖추는 등 살아 계신 왕과 다름없이 예우하였으며, 진전과 어진이 화재 등으로 없어졌을 때에는 왕과 백관, 왕실 여성들이 소복을 입고 곡을 하는 등 애도하며 진전이 있던 곳에서 위안제를 지내게 했다. 광해군과 숙종이 전란으로 소실된 진전을 재건하고 태조 어진을 봉안하는 데 큰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나, 자신의 어진을 신하들이  정기적으로  예를  갖추어  살피도록  한  정조의  조치는  어진이  국왕 자신과 왕실의 권위를 높이는 상징물이기도 했음을 알게 해 준다.
1930년대의 기록에 의하면, 창덕궁 신선원전에는 이 무렵 새로 모사된 2본의 어진을 포함해 모두 48본의 어진이 보관되어 있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어진 전체가 부산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이며, 피난지에 일어난 화재로 인해 대다수가 소실되고 지금은 극히 일부의 어진만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남아 있다. 비록 소수이고 그나마 상당 부분 소실되어 제 모습을 알기 어려운 것도 있지만, 남아 있는 어진과 관련 기록을 통해 조선 왕실의 어진 제작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조선 왕실의 어진御眞과 진전眞殿

어진 봉안 공간, 진전Jinjeon Hall, the Space for Enshrining the King's Portrait

진전은 어진을 모시고 여러 가지 의례를 거행하는 건물이다. 조선 시대 진전은 한 분의 어진을 위한 진전과 여러 임금의 어진을 위한 진전으로 구분된다. 한 분의 어진을 위한 진전으로는 조선 초기부터 한양과 지방 여러 곳에 세워진 창업주 태조 이성계의 진전이 대표적이며, 정조의 어진을 봉안하던 수원 화성의 화령전華寧殿도 이에 해당한다.
여러  임금의  어진을  봉안한  진전으로는  궁궐  안에  있었던  선원전과, 그와 별개로 도성 안에 마련된 영희전이 있었다. 조선 전기에 선원전은 어진 보관처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반면, 조선 후기에는 국왕들이 자주 찾아뵙고 기념일에는 다례茶禮나 작헌례酌獻禮등의 의례를 거행하는 곳으로서 중요성이 커졌다. 조선 후기부터 운영되기 시작한 영희전은 태조와 세조 등 공이 크다고 평가되는 왕들의 어진을 봉안한 곳으로서 선원전보다 높은 위상을 지니고 있었으며, 영희전 운영과 이곳에서의 의식에 대한 상세한 규정이 국가 전례서에 수록되었다.
진전

어진 봉안용 회화Royal Paintings Accompanied with the King's Portrait in the Royal Portrait Hall

조선 시대 왕이 있는 곳에 항상 일월오봉도가 놓였던 것처럼, 어진 제작  과정이나  완성된  어진을  봉안할  때에도  일월오봉도가  배치되었다.
어진 관련 의궤의 도설에서도 확인되는 삽병揷屛은 한 판으로 된 일월오봉도를 삽기揷機라고 하는 지지대에 끼워 세우는 형태의 그림이다. 일월오봉도 삽병은 어진의 밑그림인 초본을 걸어서 제작 상태를 살필 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어진을  봉안한  진전에도  일월오봉도가  설치되었는데,  영조  대에  이루어진  영희전  증축  관련  기록을  담은 의궤에도 감실 안에 설치할 오봉산五峯山병풍 제작에 대한 내용이 있으며, 전주 경기전 정전의 뒷벽과 창덕궁 신선원전 감실의 당가에 일월오봉도가 그려져 있는 모습을 현재 확인할 수 있다.
모란도 역시 왕실의 중요한 의례용 그림으로서, 1901년에 편찬된 『7조영정모사도감의궤』에는 어진봉안용 모란도 제작에 대한 기록이 실려 있다. 이때에는 6폭짜리 모란병풍 7좌坐와 4폭짜리 모란병풍 2좌, 그리고 선원전 뒷벽 설치용으로 총 28폭의 모란도가 제작되었다. 현재 창덕궁 신선원전 감실 뒤쪽의 벽에 모란도가 부착되어 있는 모습이 확인된다.
어진 봉안용 회화

진전 의례Rituals Held and Ritual Objects Used in the Royal Portrait Hall

어진을 모신 진전에는 전담 관원들을 배치하고 의례용 물품과 제물을 갖추어 크고 작은 제향을 올렸다. 제향의 주관자는 경우에 따라 왕이 되기도 하고, 국왕이 특별히 보낸 대신이나 지방관들이 담당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로 오면서 진전과 어진 관련 의례는 왕실 차원의 행사가 아닌 국가 전례로 정비되었으며, 국왕이 직접 제향을 올림으로써 의식의 규모와 격을 높이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조선  전기에는  태조  진전에서  거행하는  의례를  정비하여  전례서에 명시하고 정월 초하루와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및 납일臘日(동지 후 세 번째 미일未日)에 제향을 올리도록 했다. 숙종 대 이후에는 영희전永禧殿에 국왕이 행차하여 음식과 술을 올리는 작헌례爵獻禮등의 제향을 직접 거행했다. 영조 대부터는 선왕의 탄신일에 선원전에서 작헌례나 다례茶禮를 올렸다.
진전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면서 어진의 제작과 봉안 행사도 순서와 내용을 규정하여 예를 잃지 않도록 했으며, 봉안된 어진을 살펴보는 봉심奉審도 공식적으로 정해진 예법을 따르도록 했다.

진전 의례

특별강연
· 1차 강연 

  - 12월 17일 (목) 14:00~17:00
  - 본관강당
  - 조선 왕실의 어진 : 조선미 (성균관대학교 예술학부 명예교수)
    조선시대 진전 건축과 운영 : 안선호 (원광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 2차 강연
  - 1월 21일 (목) 14:00~17:00
  - 본관강당
  - 조선시대의 진전 의례 : 김세은 (한구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전임연구원)

    사진 도입기 어진 전통의 변용 : 권행가 (덕성여자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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