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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음식, 공경과 나눔의 밥상

  • 전시기간

    2024-11-20~2025-02-02

  • 전시장소

    2층 기획전시실 Ⅰ·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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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음식, 공경과 나눔의 밥상

Joseon’s Royal Cuisine: A Table for Food, Reverence and Sharing


조선시대 임금의 건강은 나라의 안위와 직결되었기에, 진귀한 재료로 만든 음식으로 몸을 보양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전국의 백성들은 정성스레 준비한 제철 특산품을 나라에 진상하였고, 궁궐의 요리사들은 진상 받은 신선한 식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왕의 수라상에 올렸다.

궁중음식은 국왕과 왕실 가족들의 일상을 유지하는 끼니이자 전국에서 올라오는 식재료를 통해 백성의 삶을 살피고, 재해로 백성의 삶이 어려울 때는 반찬을 줄여 그들의 고통에 공감을 표하는 통치의 방편이기도 했다. 국왕이나 왕실의 어른이 돌아가시면 그립고 슬픈 마음을 관을 모신 빈전과 신주를 모신 혼전, 왕릉과 종묘에 음식을 올리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돌아가신 조상에게 올리는 음식은 왕이 매일 먹는 일상식보다 더 엄격한 기준으로 격식을 갖추었다. 왕실의 경사스러운 잔치 때는 주인공인 왕과 왕비, 대왕대비를 위해 여러 차례 다채로운 음식을 올리며 복과 장수를 기원하였고, 잔치가 끝나면 수고한 모두에게 음식을 내려 노고를 위로하였다. 이처럼 궁중음식은 임금을 향한 공경과 조상에 대한 효심의 발현이자, 신하와 백성들에게 기쁨과 위로를 전하는 매개가 되었다.



Ⅰ. 궁중음식의 재료, 전국의 진미珍味가 모이다
        The Ingredients in Royal Cuisine: Countrywide Gathering of Delicacies


궁중음식은 주로 전국에서 진상進上된 제철 식재료로 차려졌으며, 후추[胡椒]와 같은 수입산 향신료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사신접대의 부담을 지고 있던 평안도를 제외한 경기, 충청, 전라, 제주, 경상, 강원, 황해, 함경에서 진상품을 올렸다. 진상의 시기와 품목은 지역별로 달랐으나 기본적으로 매달 한 차례씩 행해졌다. 진상품은 임금에게 바치던 예물이자 강제적 세금으로 백성들에게 큰 고통이 되기도 하였다.

냉장시설과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조선시대에는 식재료를 산지에서 궁궐까지 신선하게 운반하기 위해 해산물은 말리거나 젓갈로 만들었고, 때로는 얼음을 사용하기도 했다. 가뭄이나 태풍과 같은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 왕은 진상을 면제해 주거나 시기를 늦춰 백성의 부담을 줄여주기도 하였다. 궁궐에 도착한 식재료는 엄격한 검수와 요리 과정을 거쳐 임금의 수라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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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궁중음식을 만드는 사람들

        Royal Cuisine Cooks


조선시대 궁중음식을 담당한 관청은 사옹원司饔院으로 ‘부엌 주廚’자를 써서 ‘주원廚院’이라고도 했다. 사옹원은 전국에서 진상되는 식재료를 받아 여러 전각에 공급하는 일, 왕과 왕실 가족의 식사는 물론 관리들의 식사까지 책임졌다. 사옹원에는 도제조, 제조와 같은 관리자와 일반 관원부터 임금의 거처인 대전大殿과 왕비전, 세자궁의 부엌에 배치된 400여 명에 이르는 요리 담당자[반감飯監, 각색장各色掌]까지 다양한 직급의 사람들이 소속되어 있었다. 궁중 요리사는 ‘숙수熟手’라 불리는 남성들로, 이들은 밥을 짓는 반공飯工, 생선과 고기를 굽는 적색炙色, 두부를 만드는 포장泡匠, 떡을 빚는 병공餠工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었다.

왕실의 건강을 책임지는 내의원 또한 식재료를 진상 받아 국왕의 식단을 꾸리는데 관여하였다. 왕의 최측근인 내시부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음식 시중을 드는 내관은 식재료 검수부터 요리된 음식과 그릇의 상태까지 확인하며 왕의 밥상을 살폈다. 상궁과 나인도 간단한 요리를 하거나 완성된 음식을 상에 차리고 옮기는 등 왕실 가족의 식사 준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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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궁궐의 부엌

        Palace Kitchens


조선의 궁궐에는 왕과 왕비, 왕대비, 세자의 처소 가까이에 소주방燒廚房, 수라간水刺間, 생과방生果房 등의 부엌 공간이 있었다. 소주방은 불을 때는 주방이라는 뜻으로, 일상식을 만드는 내소주방과 왕실의 혼례, 생일과 같은 잔치, 제례 등 행사 음식을 준비하는 외소주방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큰 행사가 없는 평상시에는 역할에 경계를 두지 않고 함께 음식을 준비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라간은 간단한 요리와 함께 완성된 음식을 상에 차리는 공간이었다. 생물방生物房 또는 생것방이라고도 불린 생과방은 오늘날의 디저트인 떡, 다식, 과일, 차와 같은 다과류, 죽과 미음처럼 가볍게 들 수 있는 별식류를 만들었다.

이외에도 식은 음식을 데워 다시 올리거나 식사를 마친 뒤 상을 물리는 퇴선간退膳間도 부엌의 역할을 했다. 큰 행사 때는 많은 손님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행사장 근처 야외에 임시 주방인 숙설소熟說所를 설치하기도 했다. 또 궁궐 곳곳에는 음식의 간을 맞추고 맛을 돋우는 장과 소금, 젓갈을 저장하는 장고醬庫와 염고鹽庫도 있었다. 전국에서 진상된 식재료를 검수하고 손질하여 왕실 가족들의 건강 상태와 입맛에 맞게 조리하고, 이를 법도에 맞게 상에 차려내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궁궐의 부엌에는 이를 위해 재료를 보관, 운반, 계량, 조리하는 각종 도구들을 갖추었다. 또한 매일의 끼니와 간식 외에도 잔치나 제사 등 음식이 필요한 모든 상황에 어울리는 상을 차릴 수 있도록 도자기, 은기, 유기, 법랑기, 목기 등 다양한 식기와 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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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궁궐의 부엌살림 Palace Culinary Too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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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궁중의 식기 Palace Cuisine Dinnerw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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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궁중음식

        Royal Cuisine

 

1. 수라水剌, 왕의 매일을 짓다

      Sura: Daily Meals for King and Queen 

 

수라는 조선시대 왕과 왕비에게 올리는 진지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왕은 하루 평균 다섯 번의 식사를 했다. 그 중 밥과 반찬으로 구성된 수라상은 오전 10시에 올리는 아침수라, 오후 5시에 올리는 저녁수라가 있었다. 수라의 구성은 밥과 국, 김치, 장과 같은 기본 음식에 구이, 조림, 나물, 젓갈 등의 반찬이 포함된다. 이 외에도 이른 아침과 점심, 잠자리에 들기 전 죽이나 면류 같은 가벼운 음식을 먹었다. 음식상 구성은 임금의 기호 및 건강 상태에 따라 달랐으며, 식사의 횟수와 반찬 가짓수 역시 유동적이었다.

잔치나 제례음식과 달리 일상음식의 구성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다. 정조와 혜경궁 홍씨의 화성 행차를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1796)와 왕이 승하한 뒤 만 2년간 살아계실 때처럼 음식을 올렸던 기록[상식발기上食件記] 등을 통해 일상의 수라를 일부 짐작해볼 수 있다. 흔히 알려진 12첩 반상은 고종, 순종 대의 마지막 상궁들에 의해 전해진 수라상의 모습이며, 이전에는 대개 7가지 정도의 반찬이 올랐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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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상을 위한 음식, 정성으로 기억하다

      Food Offered to the Ancestors: Heartfelt Remembrance 

 

조선 왕실에서는 돌아가신 조상에게도 정성스레 음식을 올렸다. 같은 대상에게 지내는 제향임에도 공간과 성격에 따라 제물을 차리는 격식에 차이가 있었다. 왕실 어른이 돌아가시면 상중喪中에는 관과 신위를 모신 전각[빈전殯殿, 혼전魂殿]에 매일 아침저녁으로 생전에 드셨던 수라를 바쳤고[상식上食], 점심에는 간단한 다과를 올렸다[주다례晝茶禮]. 상식과 주다례는 제사음식을 담당하는 봉상시奉常寺가 아닌 사옹원에서 준비하였다. 이는 선조를 망자로 대하지 않고 살아계신 것처럼 매 끼니 음식을 공양하면서 부모 잃은 슬픔을 달랬음을 의미한다.

삼년상 이후 왕릉에서는 약과나 다식 같은 유밀과油蜜果(곡물 가루를 반죽하여 기름에 튀겨 꿀에 절인 과자류)와 과실 등으로 제사상을 차렸다. 반면 국가의 공식 사당인 종묘에서는 역대 왕과 왕비를 국가를 수호하는 신적인 존재로 여기며, 산 사람은 먹을 수 없는 날고기를 주된 제물로 바쳐 경외심을 표현했다. 이러한 음식의 차이는 때로는 조상을 살아계신 것처럼 친근히 모시고, 때로는 신으로 섬기고자 했던 태도의 차이로 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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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잔치음식, 높이 쌓아 기쁨을 더하다

      Banquet Fare, Piled High to Elevate the Joy of the Occasion

 

왕실에서는 혼례, 왕과 왕비의 생일, 세자의 탄생이나 책봉 등 경사스러운 날에 잔치를 열었다. 잔치음식은 임시 주방인 숙설소熟設所에서 왕실의 전속 숙수들이 맡았다.

잔칫날 왕과 왕비, 대왕대비에게는 여러 차례 음식상을 올리는데, 왕만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규모의 상을 대탁大卓, 그 외 잔치 주인공과 주요 왕족이 받는 큰 규모의 상을 찬안饌案이라 하였다. 잔칫상은 다양한 음식을 높이 쌓고 꽃으로 장식하여 화려하게 차려졌으며, 잔치가 끝난 후 고인 음식을 헐어 종친이나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며 잔치의 의미를 되새겼다. 잔치에서 실제 먹기 위한 상으로는 별행과別行果, 미수味數, 소선小膳, 대선大膳, 탕湯, 만두饅頭, 차茶 등을 줄지어 올렸다. 

잔치가 끝난 뒤에는 군인과 악공樂工, 여령女伶 등 참석자 전원에게 음식을 내려 노고를 치하하였고, 사대부부터 천인賤人에 이르기까지 쌀과 술, 음식을 나누어 왕실과 백성이 함께 경사의 기쁨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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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사찬賜饌, 널리 나눠 마음을 전하다

        The King’s Widespread Bestowal of Food

 

조선의 임금은 홀로 모든 음식을 탐하지 않고 보다 많은 이들과 더불어 나누고자 했다. 아기 왕자의 백일에는 백일떡을 나누고, 국왕의 만년晩年 생신에는 기로연耆老宴을 열어 원로대신들에게 잔칫상을 베풀며 장수의 기쁨을 함께 하였다. 임금을 호위하는 군사들에게는 때때로 호궤犒饋라는 이름으로 술과 고기를 내려 격무의 어려움을 위로하였다. 또한 특별히 아끼는 신하에게 보내는 선물로도 진귀한 식재료가 애용되었다. 임금이 궐 밖으로 행차할 때면 이를 보기 위해 모인 이들에게 쌀을 나눠주고 연로한 백성들에게는 예를 갖춰 따로 상을 대접하는 등 음식은 임금과 백성이 서로 기쁨을 나누고 마음을 전하는 매개물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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